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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가슴 뭉클한 감동이야기
    끄적거리기 2010. 12. 2. 17:59




    올해 1월 우한시(武汉市) 구봉산 중턱 한 중년 남자가 흰 장갑을 낀 손으로 나란히 붙은 두 묘의

    묘비를 먼지 한점 없이 닦고 있었다.

    그는 묘 앞에 가져온 과일과 황색과 백색의 국화를 놓고 “정협아, 원야야, 너희 두 모자 드디어

    만났구나. 너희들 내 이 아픈 심정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 천당에서 편안하고 행복하기를 빈다”

    이 중년 남자는 중국과학원물리수학연구소의 고급엔지니어인 원학군 씨이고 묘에 묻힌 사람은

    그의 아내인 당시 54세의 정정협, 그리고 또 한 사람은 그들의 아들인 26세의 원야다.

    2007년 원학군 교수의 부인이 몸이 불편하여 병원 진단을 받은 결과, 위암 말기였다. 이미 암세포가

    다른 곳으로 전이되어 6개월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고 2007년 3월 17일

    1차 수술을 받고 투병생활에 들어 갔다.

    입원한 원교수 부인 정정협씨는 우한체육학원의 의사로 봉직 중이었고 두 사람 사이에는 원야라는

    톈진대학교 대학원생인 아들이 하나 있었다. 아들은 석사학위 논물 준비로 집에 와 있었으나 논문

    작성이 부진하여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다 모친의 와병, 그리고 희망하던 직장에 취업하지

    못하는 등 근심이 늘어나면서 평소의 우울증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었다.

    하루는 원교수가 병원에 갔다가 귀가해 보니 아들이 심한 우울증을 이기지 못하고 약을 먹고 신음

    중이어서 급히 병원으로 옮겨 응급처치를 했으나 아들은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원교수는 친적들에게 아들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부인에게 알리지 말 것을 당부하고 다음날도 태연히

    병원에 가서 투병중 인 부인을 격려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부인은 애지중지하는 아들이 며칠 보이지

    않자, 남편에게 왜 아들이 안 오는가라고 묻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 핸드폰에 문자 메시지가

    날라 왔다.

    “보고 싶은 엄마! 열차 탈 시간이 너무 급해 엄마에게 인사도 못하고 왔어요. 저 박사학위과정

    준비를 위하여 톈진에 와 있어요. 여기 숙소도 좋고 당분간 공부하기에 불편이 없을 것 같아요.

    엄마 건강하게 다시 뵐 수 있게 힘내세요”

    이 메시지는 원교수가 아들이 남기고 간 휴대폰을 이용하여 보낸 것이었다. 원교수는 가슴이

    찢어지는 심정으로 이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메시지는 하루에 2, 3차례 병석의

    엄마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원교수가 병원에 가면 부인은 아들의 메시지를 남편에게 이야기 하면서 아들을 자랑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답니다"라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원교수는 출근 했을 때는 물론이고 출장 갔을 때 또는 세미나 중에도 아들 휴대폰을 품에 넣고

    다니면서 사시사철의 변화, 톈진의 풍물, 나라 안팍의 소식 등을 병석의 엄마에게 전했다.

    당초 6개월을 못 넘긴다고 했던 부인은 2007년, 2008년을 넘기고, 2009년은 한차례 수술을 더

    받으면서 버티었다. 엄마의 유일한 생명줄은 핸드폰이었고 그것이 생활의 전부였다.

    그러던 중 올해 1월 초 병세가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그녀가 의식이 있을 때 받은 마지막

    메시지는 “엄마, 이번 설에는 엄마한테 갈게 그때까지 버티고 있어 줘. 나 엄마가 좋아하는

    것 많이 사갈게”

    그렇게 엄마는 2010년1월19일 밤 11시 40분 눈을 감았다. 원교수는 21일 아들의 유골을 엄마

    묘소 옆에 매장했다.

    장례 후 원교수는 소회를 묻는 기자에게 자기는 지난 3년간 아내와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란다. 그는 지난 수십 년 그렇게 살아오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이 이야기는 당시 우한신문에 보도되었었고 인터넷을 타고 많은 사람들을 울렸었는데, 11월 28일

    톈진 발해조보가 관련 사진과 함께 다시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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